6월 23, 2025

낙엽보다 먼저 떨어지는 건 손가락 힘이다

수직지대 포럼 글 삽입 이미지

가을 산행은 대체로 낭만적으로 포장되지만, 암벽에서 그 계절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. 바람은 손끝의 체온을 가져가고, 마른 낙엽은 확보 지점을 덮는다. 클라이머 입장에선 오히려 봄보다 더 긴장되는 계절이다. 나는 작년 10월, 인왕산 한 암장에서 첫 추락을 경험했다. 루트는 익숙했고, 동작도 무리 없었다. 하지만 오른손 검지 한 마디가 견디질 못하고 먼저 떨어졌다.

그날 이후 이상할 정도로 손가락 감각에 집착하게 됐다. 자고 일어나면 손부터 쥐어보고, 식사 후엔 스트레칭을 했다. 그러다 깨달은 게 있다. 우리 중 많은 이들이 ‘기술’에 집중하지만, 실은 컨디션이 기술보다 더 많은 걸 결정한다는 것. 특히 주말 클라이머들에겐 그 하루가 전부인데, 그 하루의 손가락 상태가 시도 여부까지 좌우한다.

그래서 forostierravertical.comabc.com을 운영하게 된 계기도 거기에 있다. 멋진 루트 정보나 장비 리뷰도 중요하지만, 더 자주 공유되어야 할 건 ‘사소한 실패 경험’이라고 생각했다. 말하자면, 잘 못했던 날의 기록. 그게 오히려 더 생생한 학습이 되고, 커뮤니티다운 공감대를 만든다.

등반을 시작한 지 8년째지만, 여전히 나는 매 루트마다 초보자의 겸손함을 배운다. 바위 앞에선 허세보다 피로의 양이 더 정확한 척도다. 이 포럼은 그런 생각들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. 정답보다는 해석이 모이는 곳.

클라이밍은 결국, 자신과의 미세한 조율이다. 손끝에 힘이 남았는지, 마음에 욕심이 앞서진 않았는지. 그걸 확인하는 건 기록이고, 나눔이다.

– 백도균 운영진 | forostierravertical.comabc.com